1. 응우옌 왕조와 후에의 역사적 배경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후에(Huế)**는 19세기 초부터 1945년까지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Nguyễn Dynasty)**의 수도로 기능한 도시입니다. 응우옌 왕조는 1802년 자롱(Gia Long) 황제가 베트남을 통일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약 143년간 통치하며 베트남식 유교 정치 체계와 중국식 황실 문화를 결합한 독특한 체제를 구축하였습니다.
후에는 단지 정치 중심지가 아니라 베트남의 유교적 국가질서, 불교와 도교의 공존, 왕실의 예법과 문화가 모두 응축된 도시였습니다. 도시계획은 한나라 장안성과 베이징 자금성을 참고하여 설계되었으며, 중심에는 황궁이, 그 주위에는 행정기관과 백성의 거주지가 자리하는 형태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는 전통 동아시아 도시계획의 영향을 베트남 고유의 풍토와 접목시킨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황궁은 한강(Perfume River)을 사이에 두고 조화롭게 배치되었으며, 왕실의 능묘는 후에 외곽의 산악지대에 분산되어 있어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이룬 공간 구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응우옌 왕조는 유교와 천명사상에 따라 ‘하늘이 정한 왕조’라는 정통성을 강조하였고, 그 상징으로 후에에 국사당, 사직단, 문묘 등의 유교 제례 공간을 조성하였습니다.
저는 후에의 역사가 단순히 왕조의 기록이 아니라, 베트남이 외세에 맞서 고유의 국가 정체성을 어떻게 지켜왔는지에 대한 문화적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19세기 후반 프랑스 식민 지배와 근대화의 충돌 속에서도 후에는 전통의 가치를 잃지 않고 도시 전체를 역사유산으로 보존해왔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2. 황궁과 왕릉: 건축미학과 유교문화의 정수
후에 유산의 중심은 단연 **후에 황궁(Imperial City of Hue)**입니다. 후에 황궁은 ‘황성(皇城)’이라 불리며, 베트남어로는 ‘Đại Nội’라고 표현됩니다. 이 궁성은 1804년에 착공되어 1833년 민망 황제 시기에 완성되었으며, 총 면적은 약 5.2㎢로, 내성(黃城), 중성(紫禁城), 외성(城門)으로 구성된 삼중 방어체계의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황궁 내부에는 정전(太和殿), 자금성, 태묘, 태자궁, 국사당 등 다양한 기능별 건축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대부분 중국식 궁궐 건축을 베트남식으로 변용한 형태를 보입니다. 이는 색채 사용, 기와 장식, 목조 구조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특히 태화전은 국가 대례 및 외국 사신 접견이 이루어진 공간으로, 황제의 권위와 의례를 시각화한 대표 건물입니다.
건축의 배치는 좌우대칭과 중심축 강조라는 유교적 질서를 따르되, 자연과의 융합을 통해 인위적 질서와 자연적 조화의 동양 미학을 실현하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왕궁 외곽에는 제례와 교육,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한 다양한 구조물이 배치되어 후에 전체가 왕조 국가의 축소판이자 도시 모델로 기능했습니다.
후에의 또 다른 중요한 유산은 **응우옌 왕조 황제들의 무덤(陵墓)**입니다. 대표적으로 민망릉, 카이딘릉, 뜨득릉이 있으며, 각각은 황제의 성격과 철학을 반영한 독창적인 건축 양식을 보여줍니다. 민망릉은 엄격한 유교 질서를 상징하며, 카이딘릉은 프랑스식 고딕 양식과 베트남 전통이 혼합된 형태로 근대의 혼란기를 반영합니다.
저는 후에 황릉들을 단순한 무덤으로 보지 않고, 베트남 왕권의 정신과 미학, 그리고 시대적 메시지가 반영된 복합문화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생전의 권위만이 아니라, 사후에도 조상 숭배와 국가 이념을 유지하려는 철학이 공간화된 장소입니다.
3.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현대적 보존 가치
후에의 유산은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그 지정 명칭은 “후에의 복합 기념물(Historic Monuments of Hue)”입니다. 이는 동남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등재된 세계유산 중 하나이며, 제국 수도 전체를 포괄하는 복합 유산이라는 점에서 국제적으로 큰 의미를 가집니다.
등재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기준 (iv): 인간 역사상 중요한 단계를 보여주는 건축 및 도시계획의 대표 사례
- 기준 (vi): 전통문화와 상징 체계를 반영한 공간 구성
유네스코는 후에를 “유교 국가의 이상적인 수도 모델”로 평가했으며, 특히 왕권, 종교, 자연, 백성 간의 균형을 도시 공간에 반영한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는 중국의 자금성이나 조선의 한양과 유사한 동아시아 전통 도시계획의 한 분파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후에는 베트남 문화부와 유네스코의 공동 관리를 통해 보존되고 있으며, 1990년대 중반부터 황궁 복원 사업, 황릉 주변 생태 보존, 전통 의례 복원 등이 단계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매년 열리는 **후에 페스티벌(Hue Festival)**은 전통 복식, 궁중 음악, 왕실 예절 재현 등 유산을 현대문화로 재해석한 대표적 행사로, 관광과 문화 교육을 연결하는 성공적 모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유산 훼손, 상업화, 대기오염, 도시 개발 압박 등의 위협도 존재합니다. 특히 황궁 복원에는 높은 재정과 고증 기반이 필요하며, 지역 주민과의 소통 부족으로 갈등이 발생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이에 따라 유네스코는 지역 공동체 참여, 청년 문화해설사 양성, 디지털 보존 기술 접목 등을 통해 유산 보존과 지역 발전을 동시에 도모하고 있습니다.
저는 후에가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과거를 보존하는 일이 단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은 전쟁과 분단, 근대화의 압력을 겪으면서도 이 유산을 지켜왔으며, 그 노력은 동아시아 전체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후에는 ‘왕조의 도시’이자 동시에 ‘문화의 도시’, 그리고 ‘사람의 도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