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받아야 할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역 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현재의 공간입니다. 본 글에서는 세계유산 보존과 활용에 있어 지역사회의 역할과 참여 방식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유산 관리를 위한 핵심 전략을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1. 세계유산과 지역사회의 공존: 개념의 확장
세계유산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 보편의 가치가 있는 문화적 또는 자연적 자산이지만, 그 유산은 특정한 공간에 실존하며 그 공간에는 지역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세계유산은 단순한 보호 대상이 아니라, 지역의 삶과 긴밀히 연결된 ‘살아 있는 유산’이라는 관점이 점차 강조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유산 보호가 전문가와 정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고, 지역사회는 종종 소외되거나 개발 제한의 대상으로만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방적 보호 중심의 접근은 유산 보존의 지속 가능성을 해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최근 유네스코는 "지역사회 중심 유산 관리"(Community-based Heritage Management)를 강력히 지지하며, 유산의 보전과 활용 모두에 있어 주민의 주체적 참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산과 지역사회의 공존은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중요합니다. 첫째, 유산은 주민들의 정체성과 기억의 일부이며, 이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데 가장 큰 동기를 가진 주체가 바로 그들입니다. 둘째, 유산이 지역 경제, 교육, 문화 활동과 연결될 때 비로소 공동체 전체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 가능해집니다. 셋째, 공동체가 유산을 자산으로 인식할 때, 외부 충격(관광 과잉, 자연재해, 개발 압력 등)에 대한 회복력도 커지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유산은 정부의 보호 대상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사회의 동의와 협력 없이 유산을 지킨다는 것은 오래갈 수 없는 구조이며, 보존이란 결국 사람과 문화가 함께하는 시간의 연결이라고 믿습니다.
2. 지역사회 참여의 구체적 방식과 실행 사례
지역사회가 세계유산 보존과 운영에 참여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단순한 참여를 넘어 정책 수립, 관리 운영, 교육 및 해설, 문화 전승, 생계 기반 창출 등 실질적 영향력을 가지는 방식으로 발전해야 하며, 이를 위한 체계적인 구조가 필요합니다.
첫째, 유산 관리위원회나 협의체에 지역 대표를 포함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 교토의 유산구역은 지역 상공인과 사찰 대표, 주민 대표, 전문가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있으며,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예방하는 모델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둘째, 지역 주민을 유산 해설사, 안내자, 문화 행사 기획자로 양성하는 전략입니다. 이는 단순 고용을 넘어 주민의 자부심을 높이고, 유산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살아 있는 해설’을 가능하게 합니다. 베트남 후에(Hue)의 황궁에서는 지역 청년들이 문화해설사로 활동하며, 지역어와 전통 지식으로 유산을 설명하는 방식이 관광객의 높은 만족도를 이끌고 있습니다.
셋째, 전통 기술과 공예의 전승을 위한 주민 기반 교육도 매우 중요합니다. 건축 장인, 도예가, 목공, 섬유 장인 등은 유산의 물리적 보존뿐 아니라 문화의 정신을 잇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인도 자이푸르의 유네스코 창조도시 프로젝트는 이러한 전통 장인을 지역 브랜딩과 연계하여 관광 수입의 일부를 주민 경제로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넷째, 지속 가능한 관광을 위한 지역주도 프로그램 개발도 중요한 참여 방식입니다. 커뮤니티 기반 관광(CBT)은 유산을 중심으로 지역 주민이 직접 숙소, 음식, 체험 콘텐츠 등을 기획하고 운영함으로써, 관광 수익이 대기업이 아닌 지역으로 환류되는 구조를 가능하게 합니다. 태국 치앙마이의 CBT 프로그램은 세계유산 보호와 빈곤 완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실현한 대표 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지역사회 참여는 ‘형식적인 참여’가 아닌, 실제 이익과 의사결정 권한을 갖는 주체적 참여일 때 실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유산을 보는 시선이 외부 관찰자의 시선이 아니라, 내부 구성원의 시선이 되어야만 지속 가능한 보존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3. 지속 가능한 유산 관리를 위한 지역 기반 전략
세계유산과 지역사회가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참여를 넘어서, 장기적인 협력 구조와 제도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국제기구, 국가정부, 지방자치단체, 시민단체가 함께 설계하고 실행하는 통합관리체계(Integrated Management System) 가 중요하게 요구됩니다.
첫째, 법적·제도적 기반 마련입니다. 지역사회가 유산 관리의 공식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명문화되어야 하며, 유산 관련 정책 수립 시 반드시 지역 의견을 수렴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의 경우도 문화재보호법이나 세계유산관리지침 등에서 주민 참여 항목이 점차 강화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둘째, 유산 교육과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필수적입니다. 지역 청소년과 주민들이 유산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을 마련하고, 이를 지역 학교 및 마을 교육 프로그램에 통합하는 방식이 효과적입니다. 영국의 스톤헨지 교육 프로그램은 마을 아이들이 직접 유산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고 발표하는 과정을 통해 유산을 자신의 문화로 내면화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셋째, 유산의 경제적 가치와 공동체 복지의 연결입니다. 유산이 관광, 공예, 교육 등의 산업과 연계될 때, 주민들의 생계와 연결되어 유산에 대한 애착이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이때 이익 배분 구조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설계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 지역 내 갈등을 예방하고 장기적 협력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넷째, 디지털 기술을 통한 참여 확대도 중요한 전략입니다. 온라인 아카이빙, 시민기록 프로젝트, 모바일 앱 기반 해설 기획 등은 지역 주민이 디지털 기술을 통해 유산에 참여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젊은 세대의 참여를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며, 디지털 시대 유산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유산을 둘러싼 제도와 기술, 교육, 경제가 사람 중심의 구조로 정립될 때, 진정한 보존과 활용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유산은 지역사회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 때, 그리고 삶 속에서 살아 있을 때 가장 오래 지속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