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둘러싼 "활용 vs 보존"의 논쟁은 오늘날 전 세계 유산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입니다. 유산을 살아 있는 자산으로 보기 위해서는 일정한 활용이 필요하지만, 과도한 활용은 원형 훼손이나 진정성 침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본 글에서는 이 논쟁의 핵심 요소와 주요 입장, 그리고 상생을 위한 실천 방안을 심층적으로 살펴봅니다.
1. 유산 활용의 필요성과 장점: 살아 숨 쉬는 자산으로서의 문화유산
문화유산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의 사회적 자산이자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공동의 기억입니다.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한 '유산 활용'의 관점은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사회·경제·교육·관광·문화 활동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합니다.
첫째, 유산은 지역사회와 국가의 정체성 형성과 사회적 연대에 기여할 수 있는 강력한 자원입니다. 전통문화 체험, 축제, 유산 기반 예술 활동 등을 통해 주민들은 자긍심과 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며, 이는 사회적 통합과 문화적 다양성 수용에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
둘째, 유산은 지속 가능한 경제 자원으로도 활용 가능합니다. 특히 유산 기반 관광은 지역 소득을 증대시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전통기술과 공예산업의 재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루아르 계곡은 성곽 관광과 와인 산업, 전통 요리 등을 연계하여 경제적 선순환을 이루고 있으며, 한국의 경주 역시 전통과 현대가 융합된 문화도시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셋째, 유산은 교육과 창의성의 자원이기도 합니다. 유산을 활용한 창의교육, 디지털 콘텐츠, 게임, 예술 작품 등은 청소년의 역사 인식과 감수성 함양에 기여하며, 현대 사회에 적합한 방식으로 유산의 가치를 재해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의 '유산과 창의성(heritage & creativity)' 프로젝트는 지역 학생들이 유산을 주제로 직접 전시기획이나 공연 제작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유산을 실천적 교육의 장으로 전환한 사례입니다.
개인적으로 문화유산이란 살아 숨 쉬는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소중한 유산이라도 사람들의 삶과 단절된 채 박제되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사회적 의미를 갖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유산은 일정 수준의 활용을 통해 현재의 삶과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가치가 확장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2. 유산 보존의 원칙과 진정성의 위협: ‘손대지 않음’의 철학
반면 문화유산을 둘러싼 보존주의적 입장은 유산의 진정성(authenticity) 과 완전성(integrity) 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활용이 곧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유산이 과도하게 현재의 가치나 욕망에 종속될 경우, 본래의 의미와 원형을 잃게 된다는 점을 경고합니다.
첫째, 보존은 되돌릴 수 없는 가치 손실을 예방하는 행위입니다. 대부분의 유산은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고유한 구조, 재료, 기술, 맥락 등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들은 현대 기술로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의 전통 목조건축, 이탈리아의 프레스코화, 앙코르와트의 부조 조각 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둘째, 관람과 활용이 과도해질 경우, 유산의 구조적 피로도와 시각적 파괴가 동반됩니다. 관광객 증가로 인한 마모, 소음, 진동, 쓰레기, 온도 상승은 유산의 물리적 수명을 단축시키며, 동시에 유산이 소비되는 방식도 피상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관광객 과잉으로 인해 원주민의 삶이 밀려나고, 도시 자체가 상업적 전시공간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셋째, 문화의 상품화와 왜곡 역시 심각한 문제입니다. 일부 유산은 관광 수익을 이유로 원형을 훼손하거나, 전통을 소비자의 취향에 맞게 조작하며, 본래의 맥락을 상실하기도 합니다. 이는 문화다양성과 지역 정체성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며, 결국 문화유산의 본질적 가치를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보존주의자들은 '활용은 필요하되, 보존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주장하며, 특히 재현(reconstruction), 해석(adaptation), 해설(intervention) 등에 있어서 국제 기준과 윤리적 경계를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운영지침(Operational Guidelines)'이나, 베니스 헌장, 부라 헌장 등은 이러한 보존 원칙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으며, 국제적 합의에 기초한 보호가 절실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개인적으로 유산의 진정성은 단지 건축 자재나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역사적 맥락, 기억, 세계관까지 포함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보존은 단지 건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시간, 장소가 엮인 복합적 기억의 층위를 지켜내는 작업이라고 느낍니다.
3. 활용과 보존의 공존 전략: 상생을 위한 실천적 대안
활용과 보존은 대립되는 개념처럼 보이지만, 실천적으로는 상호 보완적이고 협력 가능한 방향으로 설계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유산의 고유한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의미를 확장하는 균형 전략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첫째, 구역별·기능별 보존 활용 전략 수립이 필요합니다. 유산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다루기보다, 핵심구역(핵심 보호구역), 완충지대, 외곽 관광구역 등으로 나누어 단계적 접근을 시도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앙코르 유산지구는 핵심 유산 건물은 보존 중심, 외곽 지역은 체험 중심, 주변 마을은 주민 참여형 관광 중심으로 기능을 분리하여 효과적인 관리와 이용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둘째,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통한 창의적 해석이 가능합니다. 단순히 유산을 그대로 재현하거나 관광자원화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예술, 미디어, 공연, 디자인 등과 접목하여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키는 전략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예컨대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은 야경 투어와 미디어파사드를 결합한 유산 해석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보존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관람 경험을 제공합니다.
셋째, 지역 주민의 참여와 권한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보존이든 활용이든 지역 사회가 주체가 될 때 유산은 지속 가능합니다. 이를 위해 주민 해설사 제도, 마을 공동체 기반 관광, 유산 기반 마을학교, 장인 지원사업 등이 통합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고택 체험 프로그램이나 일본의 전통 마을 복원 프로젝트는 주민 주도의 상생 모델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넷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비접촉형 활용 모델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온라인 전시, 디지털 복원 콘텐츠 등은 유산의 원형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향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는 특히 코로나19 이후 세계 유산 관리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트렌드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유산이 진정으로 살아 있으려면, 사람과의 접점을 끊임없이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접점은 신중하게 설계되어야 하며, 유산이 지닌 고유성과 가치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만 가능합니다. 활용과 보존은 상충되는 목표가 아니라, 함께 실현되어야 할 두 축이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