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골 이야기는 마을의 뿌리와 감성을 담은 구술 문화유산입니다
‘텃골’이란 말은 지역 방언이나 고어로 쓰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오랫동안 같은 성씨 혹은 같은 집안이 살아온 마을의 구석, 혹은 중심부를 가리킵니다. 대개 그곳은 마을의 중심지가 아니면서도 특정 가족이나 공동체의 역사와 정서가 짙게 깃들어 있는 공간입니다. 텃골에는 외지인이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 세대 간 전해 내려온 기억, 특정 시기에 있었던 사건 등이 응축되어 있으며, 이는 공식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마을의 생활문화와 정체성을 보여주는 소중한 구술 자산입니다.
텃골 이야기의 대부분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어르신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어 왔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대개 정확한 연도나 사건의 사실 관계를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마을이 갖는 정서적 무게와 공동체적 의미를 중심으로 전달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텃골 이야기는 문서로 정리된 지방지나 향토사 자료에서도 쉽게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이야기가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정체성과 소속감을 유지해온 사례들이 많습니다.
저는 몇 해 전 충청도의 한 산촌 마을에서 어르신과 이야기를 나누며 ‘텃골’이라는 말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씀 중 “그 골짜기에는 우리 조상이 마을 처음 왔을 때 굴을 파고 살았지”라는 한마디가 너무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 장소는 공식적으로 아무런 문화유산 표시도 없었지만, 그 어르신에게는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기원을 담은 ‘시작의 장소’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텃골 이야기는 마을이 가진 기억의 핵심이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문화의 근간입니다.
텃골 이야기를 수집하기 위한 접근과 대화의 방법
텃골 이야기를 수집하려면 무엇보다도 주민들과의 신뢰 형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텃골 이야기는 공식적으로 ‘이야기해 주세요’ 한다고 해서 쉽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심한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마을 어르신들의 기억 속에는 세월의 흐름 속에 가려진 이야기들이 많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따뜻한 태도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단도직입적으로 “옛날 이야기 좀 들려 주세요”라고 말하기보다는, 함께 걸으며 마을을 둘러보고 그 속에서 마주치는 풍경에 대한 감상이나 질문을 통해 대화를 열어가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오래된 나무 앞에서 “이 나무는 언제부터 있었을까요?”라는 식의 질문은 자연스럽게 나무에 얽힌 일화나 마을 유래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마을 회관이나 정자 등 어르신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일상적인 대화를 이어가는 과정 자체가 가장 진실한 수집의 출발점이 됩니다.
기록 방법 또한 중요합니다. 구술은 반드시 녹음 혹은 영상 기록으로 남겨야 하며, 동시에 해당 이야기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주변 환경 사진이나 지도 정보, 관련된 유물 등이 함께 수록되면 더욱 완성도 높은 자료가 됩니다. 때로는 이야기 중간중간에 다른 분들의 기억과 대조해보는 과정을 통해 내용의 진위를 확인하거나, 같은 이야기가 서로 다르게 전해지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실제로 같은 마을 안에서도 한 장소에 대해 두세 가지의 서로 다른 전승이 존재하는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텃골 이야기의 다층성과 공동체 내 기억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부분이라 느꼈습니다.
또한 조사자는 항상 ‘기록자’라는 위치를 인식해야 합니다.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시간을 함께 기록하는 동반자라는 자세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중요하며, 수집된 이야기는 반드시 주민들과 공유하고 함께 보존 방법을 논의해야 합니다.
텃골 이야기는 어떻게 문화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을까요?
수집된 텃골 이야기는 단순히 아카이브로 보관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문화 콘텐츠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텃골 이야기는 곧 그 마을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서사 구조이며, 이를 바탕으로 마을 브랜딩, 교육 자료, 관광 자원으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최근에는 스토리텔링 기반의 지역문화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는 만큼, 텃골 이야기는 마을 고유의 ‘서사 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활용 사례는 마을 지도 제작입니다. 단순한 지형 정보 위에 이야기들이 입혀지면, 그 지도는 단지 길을 안내하는 도구가 아닌 ‘마을 기억의 지형도’가 됩니다. 예를 들어 “이 골목은 옛날에 첫사랑이 고백하던 길이었다”, “저 언덕에는 도깨비불이 나타났다고 했다”는 이야기가 지도 속에 담기면, 방문객은 단순한 시각적 풍경이 아니라 서사를 따라 마을을 걷게 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또한 텃골 이야기는 전시나 공연, 다큐멘터리 콘텐츠로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과 사건, 공간은 극적 구성이 가능하며,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이나 지역 축제 콘텐츠로도 활용도가 높습니다. 실제로 제가 참여한 한 마을 기록 프로젝트에서는 어르신들의 텃골 이야기를 바탕으로 동화책을 제작하였고, 마을 초등학교 학생들이 그 그림을 함께 그려내며 세대 간의 자연스러운 문화 교류가 이루어진 바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문화의 재생산과 공동체 감성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텃골 이야기의 활용은 지역 주민이 자신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이야기를 타인과 나누며 공동체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수집이 단절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활용 기반이 함께 마련되어야 하며, 이는 공동체 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 조건이기도 합니다.
디스크립션 요약
텃골 이야기 수집은 마을의 정체성과 감성이 담긴 생활문화의 원형을 발견하고 기록하는 소중한 활동입니다. 이 글에서는 텃골 이야기의 의미와 가치, 구술 접근 방법, 문화 콘텐츠로의 활용 방안을 구체적으로 소개하였습니다. 지금 우리의 마을 골목에도 잊힌 이야기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듣고, 기록하고, 나누는 일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문화 유산 보존의 시작입니다.